‘최순실 게이트’ 언론의 역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 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단다. 국민의 투표를 받아 선출
된 대통령 위에, 국민이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단다. 나라는 발칵 뒤집혔고,
국민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느꼈다. 유례없는 한 자릿수 지지율, 너나 할 것 없이 모인 탄핵시위, 매
일같이 지속되는 언론의 보도는 우리의 국가가 비상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태는 언제쯤 진정
될까. 검찰의 수사로 모든 것이 밝혀지면 괜찮아지는 것인가.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인가.
곰탕, 프라다, 호스트.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세 단어는 모두 ‘최순실 게이트’ 사건 언론보도의 소재
로 쓰였다. 최순실은 곰탕을 거의 다 먹었고, 벗겨진 신발 한 짝은 프라다이며, 최순실의 측근이었다
는 고영태의 전 직업은 호스트란다. 눈길을 확 끄는 기사들이다. 재미도 있고, 떠들기도 좋다. 그런
데 그래서, 이게 ‘최순실 게이트’와 무슨 상관인가?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 자리가 사실상 공백이나
마찬가지고, 허탈감과 분노에 중고등학생까지 거리로 나오는 이 때 언론이 보도할 것이 겨우 ‘식사
메뉴’밖에 없었나.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많은 이야기들이 넘친다. ‘곰탕이 암호’라는 이야기나 ‘검찰에 있는 최순실은
사실 대역’이라는 등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진실’로 떠돌아다닌다. 안 그래도 얼마
남아있지 않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국민의 신뢰가 바탕돼 있지 않은 정부는 흔
들릴 수밖에 없다. 비단 현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국민들은 상식과 원칙에 배신당하는 경험
을 겪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내 나라에서 벌어졌다. 다음 정권이라고 괜찮겠는가. 무너
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에 대한 신뢰만 무너진 것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 정도는
가려낼 줄 안다고 생각했던 본인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 ‘상식’에 대한 믿음이, 경계가 흐릿해졌
다. 우파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자괴감마저 느꼈다.
시국이 이런데, 언론이 ‘받아쓰기’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언론’의 역할은 덧글과 SNS 이야기를 모아 퍼트리
는 것이 아니다. 겨우 그런 게 언론의 역할이라면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 사회에서 언론은 더 이상 필
요치 않다. 언론은 국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 지, 무엇
을 봐야 하는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비춰주어야 한다. 여느 때처럼 안이해서는 안 된다.
혼란만 가중시키는 데 일조해서는 안 된다. ‘호스트’ 따위의 저급하고 원초적인 단어를 써가며 사람
들의 눈길을 끄는 데 집중할 때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국민들은 그의 전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최순
실이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가가 혼란스러운 지금, SNS 받아쓰기나- 점심
메뉴나 보도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언론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 언론 역사에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부디 언론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할 때의 그 보도정신으로- 혼란스러운 이 때, 국민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제대로 된 언론의 모습으로 역사에 남기를, 언론학도로서 독자로서 그리고 국민으로
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