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인천 중구 선린동 28번지 건물의 진실
인천 중구 선린동 28번지.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다 지워진 가스 검진표와 화단의 쓰레기들은 건물에 생기가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을 알려줬다. 색색의 집들과 북적거리는 주변의 가게들 사이에 자리한 건물은 덩굴로 뒤덮여 옛날 그 시간 속에 묶여 있는 듯했다.
‘주인 없는 건물이다’, ‘주인이 외국에 나가있다’,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팔리지 않는다’ 많은 소문과 함께 미관을 해친다는 시선이 건물에 꽂혔다. ‘귀신 나오는 집’, ‘폐가’등 오명을 썼지만 해명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건물이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니었다. 비록 외관은 낡아있었지만, 살짝 열린문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모두 최근 날짜의 고지서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잊혔지만, 배송된 고지서에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1970년 1월, 한 부부가 건물을 인수했다. 쌓여있던 먼지를 닦아내고 화단엔 꽃을 심었다. 부부의 꿈이 담긴 간판이 걸렸다. ‘경기여관’. 여관은 여섯 남매의 도시락과 책이 됐다. 높게 드리운 담장 위로 멋스럽게 늘어진 덩굴. 차이나타운의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하는데다 고풍스런 분위기 덕분에 여관은 언제나 붐볐다. 관광객들은 여관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이를 만나는 만남의 장소로, 누군가에겐 피곤한 몸을 누이는 휴식의 장소로, 여관은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십여 년, 자식들이 하나 둘 여관을 벗어나 자리를 잡아갈 때쯤 부부는 세상을 떠났다. 여관 문은 닫혔고 건물의 소유권은 6명의 자식들이 나눠가졌다. 남매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 바빠 건물을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을 데워주던 불빛은 어느덧 자연스레 사라졌고 온기가 사라진 자리엔 빛바랜 철창과 깨진 유리창만이 남았다.
“얼마 전, 주인이 매물로 내놨어요.”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H부동산 관계자는 ‘이전에도 몇 차례 매각하려고 했으나 자녀들끼리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십 년 넘게 건물이 방치됐다’고 말을 전했다. 다들 연세도 지긋하고 여건이 좋지 않아 건물을 방치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 어린 시절의 아련함이 남아있는 공간이기에 폐가라거나 ‘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목이 좋은 자리라 금방 팔릴 것 같다’는 공인중개사 B씨의 이야기를 끝으로 노을빛 아래에 서있는 경기여관을 다시 찾았다. 이유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정체모를 건물에도 이름이 있었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숨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