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 특별전 학창생활의 추억
‘예쁘고 공부는 항상 전교 1등에 인기도 많았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저런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만한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우리들 곁에는 무수히 많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저 대단한 학창시절의 주인공은 기자의 그리고 독자들의 부모님이다. 부모님의 학창시절은 언제나 화려하고 특별했다. “엄마는 학창시절에 어땠어?” 물어보면 ‘하-’하고 감탄사부터 한 번 터지고 나서야 나오는, 우리네 부모님의 학창시절을 인천 중구 근대문학관에서 들여다봤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교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교지? 엄마도 글 썼었지. 시도 쓰고 편지도 쓰고··· 엄마가 좋아하던 선생님이 교지 편집부였거든” 한 학기에 한 번. 학교에서 글 좀 쓴다는 학생들의 글을 모아 냈던 교지가 나올 때쯤이면 방학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학생들은 설레 했다. 교내 유일 남여합반에서의 풋풋한 첫사랑과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무뚝뚝한 학생부 선생님의 시까지. 대단한 글은 아니었지만 함께 생활했던 친구, 선생님의 글은 한 학기를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로쓰기에서 가로 쓰기로, 한자에서 한글로, 흑백에서 칼라로 형식과 모양은 바뀌었지만 교지에 들어있는 설렘과 따뜻함은 여전했다.
교지에서 느낀 설렘과 따뜻함은 그대로 전시관 중앙에 위치한 난로와 도시락으로 이어졌다. 난로 위에 올려진 따끈한 도시락은 점심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한 입 두 입 다 비워지고는 했다. “도시락 당번이 쉬는 시간마다 도시락 위치를 바꿔줬지. 아래는 뜨겁고 위는 차가우니까··· 3교시 끝날 때쯤이면 김치가 익어서 교실에 김치볶음밥 냄새가 솔솔 풍겼는데···” 지금이야 다들 똑같은 급식을 먹지만 도시락은 달랐다. 열무김치, 계란말이, 김 등 다양한 반찬이 집안 사정이나 엄마의 취향에 따라 도시락에 담겼다. “외할머니네가 식구가 많잖니. 할머니가 신경을 많이 못써주셨지. 거의 항상 김치하고 집에서 뜬 김 가지고 다녔어. 그래도 맛있었어. 친구 중에 풋고추에 쌈장을 반찬으로 가지고 오는 애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문학관 한 쪽에는 교복이 걸려 있었다. “지금이야 교복 예쁘게 입으려고 다들 딱 맞게 사지만, 우리 때는 무조건 크게 샀어. 3년 동안 클 거 생각한다고 한참 크게 샀는데, 키가 별로 안 커서 졸업할 때까지 소매는 접어 입고 다녔지. 같은 학교 가면 언니가 3년 입어서 다 헤진 거 물려받아 입기도 했고. 예쁘게?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었겠니.”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이뤄진 교복은 요즘 교복에 비하면 수수하기도 촌스럽기도 했다. 걸려 있는 교복을 걸쳐보니 예전 우리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복이 커 우스웠다. 엄마는 언니에게 물려받은 교복을 입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교복을 입고 중학교 동창인 아빠를 만났을까. 거울 반대편에 중학생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추억으로 남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추억은 흐르지 않았다. 교지 한 장, 사진 한 컷, 교복 실오라기 하나마다 속속들이 배어 있다가 딸과 아들들에게 전해졌다. 많은 고민들과 걱정들도 이제는 예쁘게 삭아, 같은 고민을 하는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됐다.
주말 하루, 부모님 손을 잡고 학창시절의 부모님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엄마, 아빠가 내게 그러했듯이, 내 자녀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추억으로 들려줄 수 있도록.
인하대 언론정보 이아영 ayi9508@naver.com / http://acoo.tistory.com